카플레이에 AI가 들어왔는데 말로는 못 부른다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한두 시간은 된다. 필자에게 그 시간은 생각이 가장 잘 굴러가는 구간인데, 손은 핸들에 있고 눈은 앞에 있으니 붙잡아 둘 방법이 말밖에 없다. 그래서 운전 중에 AI를 꽤 자주 부른다. 정확히는 카플레이 AI를 부르려고 한다.
“시리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시리뿐이고, 시리는 필자가 묻고 싶은 종류의 질문에 답을 못 준다. 그래서 한번은 시리에게 다른 AI 앱을 대신 열어 달라고 해 봤다. 거기서 돌아온 대답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운전 중에는 안전을 위해 해 드릴 수 없다고 했다. 듣고 나서 좀 헛웃음이 났다. 말로 부탁하는 쪽을 안전을 이유로 막아 놓으면, 남는 방법은 내가 손을 뻗어 화면을 누르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카플레이 AI는 말로 부를 수가 없다
올봄 iOS 26.4에서 카플레이가 드디어 서드파티 대화형 앱을 받아들였다. 챗지피티와 제미나이, 클로드가 첫 타자로 들어왔으니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조건을 읽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부를 이름이 없다. “시리야”처럼 말로 불러 깨우는 호출어를 서드파티 앱에는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르려면 카플레이 화면에서 앱 아이콘을 손으로 눌러 세션을 열어야 한다.
앞서 시리가 대신 열어 주기를 거절한 것도 여기서 나온다. 애초에 말로 부를 이름을 안 줬으니 시리가 넘겨줄 곳도 없는 셈이다. 운전 중에 화면을 보지 말라고 만든 판에서, AI를 부르려면 화면을 봐야 한다.
카플레이 AI 앱이 받는 제약은 그것만이 아니다. 들어가서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지도와 음악, 메시지, 차량 데이터는 전부 막혀 있고 자기 샌드박스 안에서만 논다. 차는 시리가 몰고 나머지 AI는 그 위에 얹힌 채팅 레이어인 셈이다. “근처 주유소 찍어 줘”를 알아들은 쪽에는 권한이 없고, 권한을 쥔 쪽은 애초에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한다. 둘이 손만 잡아 주면 될 일인데 그 협동이 없다는 게 제일 답답하다.

애플은 처음 만든 적이 별로 없다
우리는 기술 기업의 본질을 최초의 발견에서 찾으려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지난 20년간 시장을 지배해 온 애플의 행보는 그 통념과 정확히 반대쪽에 서 있다. MP3 플레이어도, 스마트폰도, 태블릿도, 스마트워치도, 무선 이어폰도 애플이 처음 만든 물건이 아니다. 남들이 거칠게 다듬어 놓은 가능성을 가져다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경계를 지우고 완성도를 정점까지 밀어 올리는 것, 그게 이 회사가 실제로 하는 일이다.

연도를 늘어놓으면 더 분명해진다. 다이아몬드 리오 PMP300이 1998년이고 아이팟은 2001년, 윈도 태블릿 PC가 2002년이고 아이패드가 2010년, 페블이 2013년이고 애플워치가 2015년, 브라기 대시가 2015년이고 에어팟이 2016년이다. 한 번도 첫 번째였던 적이 없는데 그때마다 시장은 결국 애플 것이 됐다.

다만 스마트폰만큼은 “1994년 IBM 사이먼, 2007년 아이폰”으로 건너뛰면 안 된다. 그 사이 열세 해가 이 바닥에서 가장 붐볐던 구간이기 때문이다. 1996년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가 열면 쿼티 자판이 나오는 몸으로 이메일과 웹을 들고 다녔다. 이듬해 개봉한 발 킬머 주연의 「세인트」에서 주인공이 들고 다니며 온갖 일을 해결하던 그 물건인데, 그때는 영화 소품으로나 어울리는 특수 장비처럼 보였다. ‘스마트폰’이라는 말 자체도 이 무렵인 1997년 에릭슨 GS88에 처음 붙은 이름이다. 2000년에는 컴팩이 iPAQ으로 포켓PC를 밀었는데 그 라인은 2002년 HP가 컴팩을 인수하면서 HP iPAQ으로 이어졌고, 같은 해 에릭슨 R380은 키패드를 젖히면 터치스크린이 나오는 심비안 폰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더 빨라진다. 2001년에는 삼성이 SPH-i300으로 미국에서 컬러 화면 PDA 폰을 처음 팔았고, 2002년 한 해에만 핸드스프링 트레오 180과 블랙베리 5810, 소니에릭슨 P800이 몰려나왔다. 그리고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처음 단 전화는 아이폰이 아니라 LG 프라다 KE850이다. 2006년 12월에 공개돼 이듬해 5월에 팔렸으니 6월에 나온 아이폰보다 한 달 빨랐다.

그러니까 아이폰은 빈 들판에 떨어진 물건이 아니다. 여러 회사가 번갈아 쌓아 올린 것을 딛고 올라서서, 흩어져 있던 조각을 하나로 꿴 제품이었다. 이걸 폄하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남이 시작해 놓은 것을 끝까지 끌고 가 완성하는 일도 아무나 못 한다.
AI 앞에서 보이는 극단적인 신중함도 같은 전략의 연장이다. 2025년 3월에 시리 개편을 연기한다고 밝혔고, 2026년으로 미뤘고, iOS 26.4를 목표로 잡았다가 올해 2월에 그마저 밀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음 후보는 26.5이고 더 밀리면 9월의 iOS 27이라니 1년 반을 미룬 셈이다.
이걸 무능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틀린 답을 하는 어시스턴트가 전 세계 수억 대에 한꺼번에 깔리는 것과 늦게 나오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비싼지, 계산이 이미 끝난 회사다. 완벽한 형태가 나오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는 방어적인 태도야말로 애플이 타이틀을 지켜 온 방식이었다. 문제는 그 방식이 이제 애플을 구시대의 유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 차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것이다.
미디어킷에서 가져올 수 있었던 건 문장 하나뿐이었다
비슷한 벽을 며칠 전 작업에서도 만났다. 고프로 매각을 다룬 롱폼을 한 편 만들었는데, 38장면 중에 IBC 전시회 이야기가 다섯 장면 들어간다. 제품과 솔루션을 설명하는 대목이라 실물 화면이 필요했고, 그래서 막혔다.
RED 저작권 고지는 명시적인 서면 사전 승인 없이 자사 웹사이트나 간행물의 이미지를 복사하거나 사용하지 말라고 적고 있었다. 프레스 페이지에 미디어킷이 공개돼 있긴 한데, 그 밖의 자료는 승인을 받아 쓰라는 이야기다. IBC 공식 자료와 아마존 뉴스룸은 금지라고 적혀 있지도 않았는데, 재사용을 허락하는 문장을 못 찾아서 결국 못 썼다. 그럼 어떻게 했느냐? 다섯 장면을 통째로 다시 만들었다. 보도자료에 적힌 사실만 가지고 도해를 직접 그리고, 제3자가 CC 라이선스로 찍어 올린 실물 사진만 배경으로 깔고, 남은 두 컷은 생성형으로 만들어 화면에 생성물이라고 밝혔다. 그 두 컷에 130크레딧이 들었다.
오해를 살까 봐 적어 두는데, 난 이 규칙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RED가 자사 이미지를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사 이미지 금지와 제3자가 찍은 CC 사진은 애초에 별개의 문제다. 걸리는 건 규칙 자체가 아니라 판단을 거절 쪽으로 몰아 두는 기본값이다. 저작권자가 반대해서 못 쓴 게 아니라, 찬성한다는 문장을 찾지 못해서 못 썼다.
그래서 이 글에 실을 만한 역설이 하나 생겼다. 제조사 미디어킷에서 실제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쓰지 마라”고 적힌 문장 하나였다. 허락을 구하는 길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요청 메일까지 써 두었는데, 답이 오기 전에 영상 마감이 먼저 왔다. 문은 있었지만 그 문이 열리는 속도가 내 일정과 맞지 않았던 셈이다.


67장면짜리 영상에는 소재가 67개 필요하다
히말라야 빙하호를 다룬 14분짜리 영상은 장면이 67개다. 내 규칙상 한 편 안에서 같은 소재를 두 번 쓰지 않는데, 같은 화면이 두 번 나오면 보는 사람이 내용보다 먼저 “소재가 부족하구나”를 알아채고 그 뒤에 나오는 수치와 주장까지 같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면 도해와 플래시백을 뺀 장면 수만큼 서로 다른 소재를 미리 모아 놓고 시작한다.
어디서 모으느냐? 상용 활용이 확인되는 곳에서만 모은다. 위키미디어 실사진, CC 라이선스 자료, 그리고 펙셀스와 픽사베이의 4K 동영상이 사실상 전부다. 오픈버스는 올해 9월 기준으로 키 없이 부르면 0건이 돌아온다. 한 장면을 채우려고 검색어를 바꿔 가며 스무 번씩 두드리는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데,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시간을 가장 많이 잡아먹은 것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 써도 되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넘어선 것은 안전 기준이 아니라 데이터였다
반대편 이야기를 해 보자. 테슬라와 중국의 전기차 진영이 고루한 자동차 산업을 밀어붙인 지점은 안전 기준 일반이 아니라 자율주행 데이터였다. 기존 산업은 인증을 다 받고 나서 도로에 나가는 순서였는데 이쪽은 그 순서를 뒤집었다. 도로에 먼저 나가서 데이터를 쌓고, 그 주행거리로 안전을 증명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그 순서를 규제로 막는 대신 오히려 밀어줬다. 로보택시 승인이 미국보다 대략 50퍼센트 빠르고, 국가 지침으로 40개가 넘는 도시에서 레벨 4 상업 운행이 열렸다. 바이두의 아폴로고는 2025년 말에 누적 탑승 600만 회를 넘겼고, 테슬라 FSD의 전 세계 누적 주행거리는 167억 킬로미터에 이른다.
핵심은 데이터를 모으는 행위 자체를 막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안전을 증명하는 방법이 서류에서 주행거리로 옮겨 간 셈인데, 그 전환을 허락해 준 쪽이 정부였다는 게 이 대조의 진짜 내용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아무것도 안 잠근 건 아니다. 본토에서 모은 주행 데이터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서, 테슬라는 상하이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바이두와 지도 협력을 맺고 나서야 올해 9개 도시에서 감독형 FSD를 굴리기 시작했다. 모으는 일은 열어 주고 내보내는 일은 잠근 것이다. 금지와 허용 둘 중 하나를 고른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조건을 놓았다는 점에서, 필자가 바라는 모습에 가장 가깝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지난달 중국은 비상시에 문을 여는 장치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430만 대를 리콜했고 거기에 테슬라와 샤오미, 립모터가 나란히 들어갔다. 이제 수동 장치 없는 전자식 외부 손잡이가 금지되고 일부 핵심 기능에는 물리 버튼이 의무화된다. 이건 과도한 규제의 사례가 아니라 규제가 제 일을 한 사례다. 사고가 났을 때 문이 안 열리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죽는 문제이고, 이런 선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필자는 규제를 한 덩어리로 놓고 말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결과의 위험을 막는 규제와 과정의 접근을 막는 규제는 다른 물건이다. 문손잡이는 앞쪽이고, 운전 중에 AI를 못 부르게 하는 것이나 자료를 써도 되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은 뒤쪽이다. 안전 기준이 더 촘촘해져야 한다는 말과 과정을 막는 빗장이 과하다는 말은 같이 해도 충돌하지 않는다.

문을 열어 줄 사람이 문 앞에 없다
AI 학습과 저작권 쪽도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6월 미국 법원은 책으로 모델을 학습시킨 행위를 공정이용으로 봤지만 조건을 달았고, 며칠 뒤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시장에 준 피해를 더 엄격히 따져야 한다고 했다. 앤스로픽은 15억 달러에 합의했고, 우리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4월에 공정이용 안내서를 냈다. 유니버설뮤직은 소송을 접고 라이선스 계약으로 갈아타 함께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 있다.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른데, 그 갈림이 법의 뿌리와 닿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판례법을 쓰는 나라라 조문에 미리 다 적어 두지 않는다. 일이 벌어진 뒤에 법원이 사안마다 공정이용인지를 따지는 구조이고, 지난해 6월에 며칠 사이로 판단이 갈렸던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판단이 갈렸다는 사실이 아니라 적혀 있지 않아도 일단 해 볼 수는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 AI 회사들이 먼저 움직이고 소송은 나중에 붙는 순서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대륙법계는 반대쪽이다. 조문에 적힌 것을 먼저 보고, 한번 정하면 그게 넓게 일괄로 걸린다. 열든 가두든 통째로 간다는 뜻이라 중간이 없다. 일본은 2018년에 저작권법 제30조의4를 손봐서 정보 해석을 목적으로 하는 이용을 아예 조문에 적어 넣었고 2019년부터 시행 중인데, 그렇게 한 줄을 적으니 AI 학습에 관해서는 가장 넓게 열린 나라가 됐다. 우리에겐 그 조문이 없다. 미국 공정이용과 비슷한 일반 조항인 제35조의5는 있지만 텍스트·데이터 마이닝을 콕 집어 허용하는 문장이 없어서, 없는 쪽이 그대로 넓게 막힌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럼 앞에서 본 중국은 어느 쪽인가 싶은데, 중국도 미국식은 아니다. 대륙법계라 판례에 구속력이 없고 저작권법도 허용되는 경우를 조문에 늘어놓는 열거식이다. 다른 점은 국회가 아니라 행정이 움직인다는 데 있다. 생성형 AI는 2023년 8월에 시행한 관리 잠행판법으로 규율하고, 자율주행은 법을 고치는 대신 부처 지침과 시범 운행 허가로 길을 먼저 텄다. 의견도 안 듣고 찍어 누른다는 뜻은 아니다.
잠행판법도 2023년 4월에 초안을 공개해 한 달간 의견을 받았고, 7월 최종본에서 여러 조항이 실제로 물러섰다. 다만 무엇이 물러섰는지를 보면 성격이 드러난다. 1만에서 10만 위안짜리 벌금 조항이 빠졌고, 적용 범위에서 기업 내부용과 연구개발용이 제외됐으며, 생성물이 진실하고 정확해야 한다던 의무가 정확성을 높이는 조치를 취하라는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용자 쪽에 선 변화가 없지는 않아서 실명 인증 요구도 함께 삭제됐지만, 큰 줄기는 사업자의 부담을 더는 방향이었다.
그 방향이 쓰는 사람들의 정서와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입소스가 2024년 4월 말에 32개국 성인 2만 3천여 명에게 AI 제품과 서비스의 이점이 단점보다 큰지 물었더니 중국에서는 83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미국은 39퍼센트, 캐나다는 40퍼센트였다.
다만 이 숫자를 그대로 맞세우면 안 된다. 같은 보고서의 방법론 쪽을 열어 보면 중국을 비롯한 열세 개 나라의 표본은 일반 인구보다 도시에 살고 더 배웠고 더 넉넉한 쪽에 쏠려 있어서 “연결된 계층”의 시각으로 읽으라고 적혀 있다. 미국과 한국 표본은 전국 대표로 분류돼 있으니 애초에 성격이 다른 숫자인 셈이다. 그래도 방향만큼은 읽힌다. 적어도 중국에서 AI를 실제로 쓰고 있는 층은 기술 쪽으로 기울어 있고, 규제가 그쪽으로 움직여도 반발을 살 일이 적다. 규제의 모양을 정하는 것이 법의 계통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사회가 기술을 어느 쪽 눈으로 보고 있느냐가 같이 정한다.
차이는 절차의 유무가 아니라 법률을 고치지 않고 부처 규장으로 끝낸다는 데 있다. 국회를 통과할 일이 없으니 초안 공개부터 시행까지 넉 달이면 된다. 그래서 열 때도 빠르고 잠글 때도 빠르다. 주행 데이터를 모으는 건 열어 주면서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막고, 문손잡이가 문제라고 판단하자 430만 대를 한 번에 불러들인 것이 같은 손에서 나온 일이다.
같은 성문법계인데 한쪽은 활짝 열리고 한쪽은 통째로 닫힌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법의 계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계통에서는 적히지 않은 일을 시도해 볼 여지가 없다는 데 있다. 판례법 쪽에서는 금지한다고 적혀 있지 않으면 해 보고 다투면 되지만, 우리 쪽에서 그렇게 움직이면 규정 위반부터 된다. 필자가 RED 약관 앞에서 멈춰 선 것도 똑같은 모양이었다. 금지가 무서워서 멈춘 게 아니라 허용을 확인할 문장이 없어서 멈췄고, 개인 제작자가 “일단 쓰고 문제 되면 내리자”를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방향은 제법 분명해 보인다. 금지냐 허용이냐로 싸우던 국면이 값을 매기고 통로를 뚫는 국면으로 넘어가는 중이다. 사실 대다수의 저작자와 연구자는 자기 저작물이 더 큰 지적 자산으로 쓰이길 바라지, 아무도 못 쓰게 잠가 두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그 의사를 확인할 통로가 없으니 전부 거절로 처리되고 만다. 지금 창작자의 폭을 좁히는 것은 저작권자의 뜻이 아니라 그 통로의 부재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규칙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운전 중에 AI를 쓰는 일이 위험하다는 판단은 존중한다. 다만 카플레이 AI처럼, 위험을 줄이겠다고 만든 규칙이 정작 운전자에게 화면을 누르게 만든다면 그건 안전이 아니라 알리바이에 가깝다. 저작권 보호가 목적이라면 “써도 된다”고 답해 주는 창구가 “쓰지 마라”는 문장만큼은 잘 보여야 한다. AI를 어디까지 어떻게 굴릴지를 한도까지 써 가며 시험해 본 입장에서 보면, 요즘 발목을 잡는 것은 대체로 모델의 성능이 아니라 이런 통로들이다.
빗장을 뽑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을 열어 줄 사람을 문 앞에 세워 두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