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텔 블루 바닥 위의 고프로형 액션캠 두 대. 한 대는 투명 방수 하우징에 들어 있고, 옆에 예비 배터리와 마이크로SD 카드가 있다

고프로 매각 문서를 끝까지 읽고 나니 내 장비가 달라 보였다

9월 초에 고프로가 팔렸다는 소식을 봤다. 처음엔 “아, 결국 그렇게 됐구나” 하고 넘길 생각이었다. 액션캠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였고, 적자를 내던 회사가 주인이 바뀌는 것도 딱히 새로울 게 없으니까.

그런데 영상으로 한 편 정리해 볼까 싶어 고프로 매각 공시를 열었다가 며칠을 붙잡혔다. 뉴스 요약본과 원문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약본은 “적자 회사가 2억 8,500만 달러에 매각됐다”까지만 말하는데, 정작 문서에서 이상한 건 그 뒤였다.

그렇게 붙잡힌 며칠이 7분 반짜리 영상 한 편이 됐다. 딜 구조와 구매자를 순서대로 해부한 건 그쪽이 훨씬 자세하니, 사실관계가 궁금한 분은 먼저 보고 오시는 편이 낫다.

공시와 서한을 순서대로 읽은 롱폼. 이 글은 그 영상에서 못 한 이야기, 그러니까 이 소식이 내 장비 선반에 무슨 뜻인지를 적은 것이다.

고프로 매각에서 놀란 건 가격이 아니라 구매자였다

거래 조건 자체는 단순하다. 주주가 받는 건 주당 1.14달러 현금이고 다 합쳐 2억 8,500만 달러다. 여기에 합쳐진 회사의 지분 10퍼센트가 붙고, 고프로가 지고 있던 부채 9,200만 달러는 거래가 끝나는 날 전액 갚는다. 상장은 나스닥에 그대로 남는다.

문제는 산 쪽이다. 고프로를 사 간 스타맨 옵티컬이라는 회사는 합병 발표 바로 전날인 8월 31일에 델라웨어에 설립됐다. 자기 이름으로 쌓은 영업 이력이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인수용으로 그날 만든 껍데기 회사라는 이야기인데, 그럼 실체는 어디 있느냐.

한 층 위 지주회사인 스타맨 홀딩으로 올라가면 그림이 보인다. 인케이스, 인시피오, 서바이버, 그리핀 같은 브랜드를 가진 액세서리 그룹이다. 스마트폰 케이스를 사 본 적이 있다면 한 번쯤 만져 봤을 이름들이다. 여기에 반도체와 의료, 부동산까지 붙어 있다.

그리고 이 딜의 진짜 엔진은 따로 있었다. 2024년에 뉴 포토닉스와 합작해 만든 스타맨 뉴 포토닉스라는 회사인데, 광 트랜시버를 만든다. 전기 신호를 빛으로 바꿔 광섬유에 실어 보내는 부품이다. 데이터센터 안에서 GPU와 GPU를 잇는 일을 하는데, AI 모델이 커질수록 연산보다 대역폭과 전력이 먼저 막히기 때문에 요즘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 서 있는 부품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AI 데이터센터에 광통신 부품을 넣는 회사가 액션캠 회사를 샀다. 여기까지 읽고 나서야 이게 카메라 업계 뉴스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공시에 적힌 것을 그대로 그려 본 딜 구조. 껍데기 회사 한 칸을 걷어내야 실체가 보인다.
공시에 적힌 것을 그대로 그려 본 딜 구조. 껍데기 회사 한 칸을 걷어내야 실체가 보인다.

고프로를 벼랑으로 민 것도 결국 AI였다

더 이상한 건 고프로가 왜 그 지경이 됐느냐 쪽이다. 필자는 막연히 “스마트폰이랑 DJI한테 밀렸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절반은 맞는데, 결정타는 다른 데서 왔다.

6월 1일 공시에 고프로가 직접 적어 놓은 문장이 있다. 2026년 3월 마지막 주에 메모리 가격이 80에서 115퍼센트까지 뛰었고, 이어 4월에는 공급사들이 공급량 부족을 알려 왔다는 내용이다. 같은 공시에 “계속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 중대한 의문이 있다”는 문구도 함께 들어갔다. 회사가 자기 입으로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다.

숫자를 보면 그럴 만했다. 2025년 한 해 순손실이 9,350만 달러였고 그해 말 손에 쥔 현금은 4,970만 달러뿐이었다. 그전에 이미 두 번 사람을 줄였는데, 2024년 11월에 인력의 4분의 1을 내보내고 2026년 4월에 또 23퍼센트를 줄였다. 그러고도 5월 11일에 회사를 팔 수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7월 8일에는 창업자 닉 우드먼이 자기 관계사를 통해 2,000만 달러를 회사에 넣었다. 금리 6.5퍼센트에 2028년 만기인 담보부 노트였다.

여기서 필자가 한참을 멈춰 있었다. 액션캠은 원가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대당 마진은 얇은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만드는 회사에 부품 값이 한 주 만에 두 배가 되면, 잘 팔든 못 팔든 그냥 무너진다. 그러니까 고프로를 죽인 건 경쟁사가 아니라 원가였고, 그 원가를 정한 건 카메라 시장이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의 구매 담당자였다.

여기서부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대목이 불편했던 건, 같은 일이 이미 우리 책상 위에서도 벌어지고 있어서다.

트렌드포스 전망을 보면 2026년 2분기 일반형 D램 계약가격이 전분기 대비 58~63퍼센트, 낸드가 70~75퍼센트 오를 것으로 봤다. 이유는 고프로 공시에 적힌 것과 똑같다. 제조사들이 마진 좋은 HBM과 서버용 D램, 기업용 SSD에 생산 능력을 몰아주면서 소비자용 물량이 남지 않는 것이다.

증거가 하나 더 있다. 마이크론이 2025년 12월에 크루셜 브랜드의 소비자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고, 2026년 2월 말로 소매 출하를 끝냈다. 램 좀 끼워 본 사람에게 크루셜은 그냥 무난한 선택지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이 시장에서 빠진 것이다. 개인에게 메모리를 파는 큰 회사가 셋에서 둘로 줄었다.

필자의 작업 환경도 여기 그대로 걸려 있다. 램 32기가짜리 맥북 프로 한 대에 외장 SSD 몇 개를 물려 쓰는데, 다큐 하나가 원본만 450기가였다. 저장장치는 소모품처럼 계속 사야 하는 물건이고, 램은 늘리고 싶어도 맥에선 살 때 결정해 버려야 한다. 그러니 이건 고프로가 아니라 내 다음 장비 견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은 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고프로가 맞은 것과 내 견적서가 맞는 것이 같은 흐름의 끝이다.
같은 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고프로가 맞은 것과 내 견적서가 맞는 것이 같은 흐름의 끝이다.

그들이 산 건 카메라가 아니라 렌즈를 설계하던 사람들이다

그럼 스타맨은 무너져 가는 카메라 회사를 왜 샀을까. 문서에 그대로 적혀 있다.

스타맨의 찰스 테벨레는 진보된 광학과 이미징이 AI와 국가안보, 더 넓은 경제에 필수적인데 그 하드웨어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해외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즉 그들이 산 건 액션캠 사업이 아니라 20년 넘게 렌즈와 광학계를 다뤄 온 설계 자산, 그리고 미국 안에서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

실제로 이들은 뉴저지 워런에 공장을 짓고 있다. 1억 5,000만 달러를 들여 10만 제곱피트 건물을 고치고 250명을 새로 뽑겠다고 했는데, 이 공장을 부른 건 시장이 아니라 정책이었다. 국방부가 특정 해외 생산 광 트랜시버를 조달하지 못하게 막기 시작하면서 미국 안에서 만드는 일이 급해졌고, 뉴저지주는 10년 약정에 세액공제 3,750만 달러를 붙여 줬다.

그리고 어순 하나가 이 모든 걸 요약한다. 우드먼 본인이 낸 문장에 소비자와 상업, 그리고 방위 시장이 나란히 적혔다. 액션캠 회사의 보도자료에 방위 시장이 세 번째 항목으로 올라오는 일은 원래 없다.

서한에 없는 이름이, 있는 이름보다 많은 말을 한다

9월 3일에 우드먼이 공개 서한을 썼다. 여러분 모두를 위해 놀라운 카메라를 만드는 일은 우리의 핵심 DNA이고 존재 이유이며 그건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더 혁신적인 카메라와 더 똑똑한 액세서리, 더 강력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약속했다. 문장만 놓고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 편집을 오래 하다 보면 생기는 버릇이 있다. 어떤 컷이 들어갔는지보다 어떤 컷이 빠졌는지를 먼저 보게 되는 것이다. 뺀 자리가 항상 더 많은 말을 하기 때문인데, 이 서한이 딱 그랬다.

제품 이름이 하나도 없다. 출시 시점도 없고 로드맵이라 부를 만한 것도 한 줄이 없다. 넉 달 전만 해도 이름이 있었는데 말이다. 4월 NAB 쇼에서 GP3 프로세서를 얹은 미션1 시리즈를 공개했고 5월 28일에 전 세계 출시까지 했다. 5,000만 화소 1인치 센서를 얹은 현행 주력이다. 이름이 멀쩡히 있는데도 쓰지 않았다면 그건 잊은 게 아니라 아직 말할 수 없다는 쪽에 가깝다.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클라우드 구독이 계속되는지, 액세서리 생태계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언급이 공시에도 서한에도 없다. 우리가 실제로 돈을 내고 쓰는 두 가지인데 그렇다.

내 장비는 죄다 DJI인데, 왜 이게 남 얘기가 아닌가

여기까지 쓰고 나서 좀 웃겼다. 필자는 고프로를 주력으로 쓰지 않는다. 6월 양평 다큐를 만들 때 폴더 열두 개에 들어 있던 영상 파일 313개는 헬멧캠부터 포켓, FPV, 미니, 에어까지 거의 전부 DJI였다. 그러니 남의 집 불구경하듯 읽고 넘겨도 될 이야기여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스타맨의 뉴저지 공장을 부른 그 정책축이 내 장비 쪽에도 그대로 와 있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22일에 미국 FCC가 외국산 드론과 핵심 부품을 커버드 리스트에 올렸다. 이미 인증받아 팔리던 모델은 그대로 쓰고 팔 수 있지만 새 기기는 인증을 받지 못한다. 규제 내용을 정리한 글들을 보면 당장의 효력은 좁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물론 한국에서 오늘 내 드론을 못 날리는 건 아니다. 다만 다음 세대 제품이 어느 시장을 기준으로 설계되고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질지는 확실히 달라진다. 광학과 이미징이 국가안보 품목으로 분류되는 순간, 내가 쓰는 촬영 장비는 취미 용품이 아니라 조달 정책의 대상이 된다. 고프로는 그 흐름에서 팔린 쪽이고 DJI는 막힌 쪽인데, 미는 힘은 같은 데서 나온다.

장비를 스펙표로만 고르던 사람 입장에서 이건 꽤 서늘한 이야기다. 센서 크기와 손떨림 보정을 아무리 비교해 봐야, 그 제품의 다음 세대를 정하는 건 화질이 아니라 어느 나라 국방부의 조달 목록이라는 뜻이니까.

같은 주 암스테르담에서는 카메라 없는 부스가 사람을 모으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바로 그 주에, 암스테르담에서 방송·영상 산업 최대 전시회인 IBC가 열린다. 오늘부터 14일까지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두 극단이 같은 전시장 안에 나란히 서 있다.

5번 홀 AWS 부스에는 카메라가 한 대도 없다. 관람객이 태블릿에서 장르와 캐릭터만 고르면 AI 에이전트가 대본을 쓰고 디지털 배경과 의상까지 만들어 준다. 그렇게 60초에서 90초짜리 세로형 드라마 한 편이 몇 분 만에 나오고, 관람객은 자기 클립을 손에 들고 부스를 나온다. 기획도 캐스팅도 촬영도 없이 고르는 것과 만들어지는 것만 남았다.

반대편 11번 홀에는 레드가 전시장 안에 복싱 링을 통째로 세워 놨다. 브이 랩터에 듀얼 피시아이 렌즈를 물려 8K 50프레임으로 찍고, 그 신호를 광섬유로 실시간 전송해 애플 비전 프로에서 180도로 보여 준다.

한쪽은 카메라를 아예 없애 버렸고 다른 쪽은 카메라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는데, 두 부스가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 경쟁의 축이 카메라 스펙에서 파이프라인으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드 쪽 데모에서 신호를 실어 나르는 것도 결국 광섬유다. 고프로를 사 간 회사가 만드는 바로 그 물건이다.

카메라를 없앤 부스와 카메라를 끝까지 민 부스가 같은 전시장에 있다.
카메라를 없앤 부스와 카메라를 끝까지 민 부스가 같은 전시장에 있다.

솔직히 말하면 필자도 이미 그쪽에 서 있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AI와 닷새 만에 만들었고, 그 뒤에 따라온 검수를 감당하려고 앱까지 하나 만들었다. 카메라를 고르는 데 쓰는 시간보다 파이프라인을 손보는 데 쓰는 시간이 훨씬 길어진 지 오래다. AWS 부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남의 일 같지 않았던 이유가 그거다.

그래서 장비를 고르는 기준을 하나 늘렸다

고프로를 쓰고 계신 분이라면 감상 말고 실무로 확인할 게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클라우드에 올려 둔 원본이다. 구독이 계속된다는 말이 어느 문서에도 없으니 지금 로컬이나 다른 저장소로 한 벌 내려받아 두는 편이 안전하다. 서비스가 끝난다는 얘기가 아니라,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액세서리와 마운트인데 이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새 지주회사가 원래 케이스와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던 그룹이기 때문이다. 마운트 규격이 갑자기 사라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셋째는 좀 더 넓은 이야기다. 앞으로 카메라를 살 때 필자는 스펙표 옆에 질문을 하나 더 붙이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 제품으로 돈을 버는가, 그리고 이 제품은 이 회사의 우선순위에서 몇 번째인가. 고프로는 액션캠으로 돈을 못 벌고 있었고 새 주인에게 카메라 사업은 광학 자산에 딸려 온 부속이다. 그런 회사의 로드맵을 기다리는 것과, 그 제품이 곧 회사의 전부인 곳의 로드맵을 기다리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마지막으로 숫자 두 개를 붙여 둔다. 2014년 10월 고프로 주가의 최고가는 98.47달러였고 이번 인수가는 1.14달러다. 98.8퍼센트 아래다. 그런데 발표 뒤 다섯 거래일 동안 주가는 116퍼센트가 올랐고, 9월 4일 종가는 1.7달러로 인수가보다 49퍼센트나 높았다. 시장이 현금 1.14달러가 아니라 그 뒤에 남는 지분 10퍼센트에 값을 매기고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시장도 카메라 회사에 값을 매긴 게 아니다. 액션캠이라는 물건을 세상에 만들어 낸 회사가, AI 인프라 부품 공급망의 한 항목으로 다시 분류된 것이다. 내 카메라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도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다시 분류될 텐데, 그때 가서 알기보다는 지금 알아 두는 편이 낫겠다 싶어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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